폭풍 속으로 사라진 목조 화물선
1911년 11월 30일 밤, 길이 235피트의 목조 증기선 랄리(Raleigh)호는 펜실베이니아 이리(Erie)에 위치한 해머밀 제지회사(Hammermill Paper Company)에 화물을 전달하기 위해 항해 중이었다. 웰랜드 운하(Welland Canal)를 빠져나온 직후, 배는 강력한 폭풍우와 마주쳤다.
자정 무렵,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거센 파도와 강풍 속에서 배의 키(rudder)가 부러지면서 조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이 항해는 당초 그해의 마지막 운항으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결국 랄리호에게는 영원한 마지막 항해가 되고 말았다.
침몰까지의 절박한 사투
날이 밝을 무렵에는 해치 덮개마저 파손되며 선체 안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선장 해리 보베(Harry Beauvais)는 배가 해안으로 떠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닻을 내리도록 지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배는 닻에서 풀려나 암초에 좌초했고, 보베 선장은 구명정을 내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첫 번째 구명정은 해안 근처에서 전복되었지만, 승선했던 7명의 선원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엠파이어 라임스톤(Empire Limestone Company) 직원들의 용감한 구조 덕분에 모두 목숨을 건졌다.
반면 두 번째 구명정의 운명은 훨씬 가혹했다. 해안 인근에서 배가 뒤집히며 탑승자 4명 전원이 물에 빠졌고, 이 사고로 프레드 와이즈(Fred Wise) 부부가 익사했다. 포트 콜본의 지역 의사 레잉(Laing) 박사가 급히 소생을 시도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당시 쉬어슨 포인트(Shisler Point) 해안에 모여있던 지역 주민들은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상 대응에 투입된 엠파이어 라임스톤사 직원들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며 선원 대부분을 구조해냈다.
사라진 배, 남겨진 닻
1967년부터 다이빙을 시작한 포트 콜본 출신의 포토다이버 제프 바커(Geoff Barker)는 1977년이 되어서야 처음 랄리호 침몰지를 탐사했다. 그는 초기 바다 다이빙 경험을 통해 염수가 침몰한 화물선을 부식시켜 결국 녹슨 뼈대만 남기는 파괴적인 힘을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현재 랄리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포트 콜본 해양박물관(Port Colborne Marine Museum) 부지에는 당시 배가 사용했던 닻 중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은 폭풍과 사투를 벌이다 스러진 화물선의 마지막 순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Dan's Dive Shop의 Matt Mandziuk

